죽음을 이해하면 자살하지 않는다!
국내 유일의 생사학 전문가가 이야기하는 ‘자살’의 실체와 ‘죽음’ 바로알기
자살하는 대한민국’
또 한 사람의 자살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탤런트 안재환의 자살 이유는 여느 자살자와 다를 바 없는 ‘사업 실패’로 알려졌지만, 연예인이자 유명인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충격이 더 큰 듯하다. 사회 유명인사나 유명 연예인이라고 해서 인생에서 마주치는 고통과 좌절이 피해가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이들의 자살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살의 치명적 결과에 대해 둔감하게 만들고, 심지어 비슷한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모방 자살의 유혹까지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하다.
이 책 『자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죽음』은 안재환의 죽음에 딱 한 걸음 앞서 출간되었다. 연예인과 사회 유명인을 포함하여 우리 사회에 만연한 자살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책이다. 한국은 이미 2005년부터 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19쪽 이하 참고) 가히 ‘자살 선진국’이라 할 만하다. 게다가 우리 사회의 자살은 초등학생부터 8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나이와 계층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일어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사회적으로는 높은 실업률, 빈곤층 증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사회 경쟁강도, 경쟁적 교육체제 등에 원인이 있을 것이고, 개인 차원에서는 우울증, 사회부적응, 잘못된 인생관, 생명경시 풍조 등이 원인일 것이다. 이 책은 자살의 이런 동기들과 현상을 하나하나 짚어보고, 그 효과적인 해결책과 예방책을 제시하고 있다.
자살 문제, 웰-다잉(Well-dying) 교육만이 해결책이다
저자는 책에서 자살의 모든 동기 밑에는 ‘죽음’에 대한 그릇된 이해가 숨어 있다고 본다. 죽음과 삶은 완전히 단절된 것이라는 생각, 따라서 죽음으로써 삶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 죽음이 자유를 가져다준다는 생각이 자살의 최초 출발점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 문제나 개인적 동기는 ‘간접사인’일 뿐, 죽음에 대한 오해야말로 ‘직접사인’이라는 얘기다.
자살은 그 형태가 어떠하건, 동기가 어디에 있건, 결국은 개인의 선택에 따른 행위이다. 이런 점에서 개인들의 인식 전환만 이루어져도 자살 예방은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거듭되는 자살의 늪에 빠진 우리 사회를 향해 저자가 또 한 번 ‘웰-다잉’을 외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직 철학교수이자 국내 유일의 ‘생사학’ 연구소장인 저자는 이 책에 앞서 출간한 『마지막 선물』(부제: 웰다잉, 죽음이 가르쳐주는 삶의 지혜들 / 2007년 세종서적)에서, 삶에서 마주치는 고통이 우리 영혼에게 얼마나 값진 기회인지, 우리의 죽음이 왜 존엄해야 하는지를 생사학(Thanatology, 타나톨로지)의 관점에서 설득력 있게 풀어낸 바 있다. 저자는 이제 논지를 더 구체화하여 ‘자살’의 치유책으로서 웰-다잉을 이야기한다.
연예인 자살이 더 문제인 이유
우리나라의 자살자 수는 2006년 기준으로 1년에 1만 688명, 1일 평균 29명에 이를 정도다(2007년 수치는 책 출간시점에 미발표되었으나 1만 2,174로 보고됨). 자살 사실을 숨기고 싶어하는 유가족의 심리와 사고사로 처리되는 경우까지 고려하면 그 숫자는 훨씬 늘어난다.(21-22쪽 참고) 자살은 숫자상으로도 이미 우리 사회에서 작지 않은 문제가 되고 있지만, 특히 연예인 자살은 사회적 파장을 크게 일으키곤 한다는 점에서 더 심각한 문제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2005년 영화배우 이은주의 자살에 이어, 2007년 1월 가수 유니와 2월 탤런트 정다빈의 연이은 자살, 그리고 이번의 안재환 자살까지 연예인 자살은 잊을 만하면 터져나와 팬들을 공황에 빠뜨리고 있다.
연예인의 자살은 우울증이 주된 원인이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77-83쪽 참고) 인기 급변에 따른 좌절감, 대중 속의 고독감, 안티팬들로 인한 상처 등이 남다른 우울증을 만들고 있는데, 일반인도 겪곤 하는 작은 실패와 좌절감조차 직업 특성상 대중 앞에 서야 하는 연예인의 처지에서는 더 증폭될 수밖에 없다는 데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이들의 자살은 “베르테르 효과”로 불리는 자살 도미노를 일으킨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 이 용어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당대 젊은이들의 숱한 모방 자살을 낳았던 데서 유래하는데, 연예인 자살이 베르테르 효과를 일으킨다는 것은 수치로도 입증되고 있다.(91쪽 참고) 직업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자기 노력과 함께, 공인 의식과 사회적 책임이 더 요구되는 이유다.
사람들이 자살하는 까닭은?
그렇다면 연예인과 달리 일반인들에게서 자살이 만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사회에서 자살자들의 유형은 사회적 차원에서부터 좀 더 개인적 차원까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학업에 치인 초등학생과 청소년의 자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책무가 있는 지도층의 자살, 사회적 실패나 파산으로 인한 자살, 독거노인의 자살, 군부대 내 자살, 성형 실패로 인한 자살, 게임 중독으로 인한 자살 등 ‘이런 자살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자살의 동기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심각한 범위까지를 망라하고 있다.(제4장 참고)
저자 오진탁 교수는 자살의 원인을 크게 우리 사회의 지나친 ‘성공지향주의’와 ‘사회구조적 안전망 부재’에서 찾는다. 사회적 실패자는 물론이요 학업 경쟁에서 밀린 초등학생까지 자살을 택하는 데는 세속적 성공만을 최고로 치는(또는 황금을 만능으로 보는) 사회 풍조에 우선적 원인이 있다. 한편, 불가항력적 빈곤 때문에 자살하는 독거노인이나 극빈계층의 문제는 최소한의 사회안전망도 갖추지 못한 우리 사회가 온전히 책임져야 할 사안이다.
그러나 이 모든 자살 사례들에는 항상 개인의 ‘의식’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한 마디로 죽음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여, 또는 자살의 실체를 제대로 알지 못하여, 자살이 당면문제의 최종해결책인 양 잘못된 선택을 하곤 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이 책은 바로 이 주제를 위하여 씌어진 것이다. 과연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에 대한 오해가 자살을 부른다
삶과 죽음의 문제를 ‘영혼의 성숙’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보는 생사학에서는 삶, 죽음, 죽음 이후의 3단계를 하나로 이어진 것으로 이해한다. 죽음이란 삶의 단절이 아니라 삶의 한 단계가 다음 단계로 이동하는 데 불과하다는 것이다. 죽음은 ‘끝’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의 삶에서 이룬 성취는 죽음의 순간과 이후에도 남는다고 생사학은 이야기한다. 여기서의 ‘성취’가 물질적 성취를 이야기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고통’의 가치도 달라진다. 우리 존재는 어려운 상황에 처할수록 깊이와 진면목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즉 현재의 삶에 주어진 고통은 죽어서까지 이어질 영혼의 성숙을 위해 세상(혹은 신)이 주는 축복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생사학의 권위자이자 『인생수업』 저자인 퀴블러-로스가 강조한 이야기다.(62-64쪽 참고)
이런 시각에서 보면 흔히 4가지 심각한 오해가 자살과 관련해 벌어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제5장 참고) 첫째는 “왜 나만 이런 고통을 당하는가?” 하는 오해이다. 삶의 좌절과 고통이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다. 다만 그것을 영혼을 위한 축복으로 받아들이느냐, 저주로 받아들이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둘째는 “자살하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오해이다. 삶과 죽음 이후는 우리 영혼에게는 하나로 이어진 것으로, 많은 증언자들이 자살 이후의 극심한 고통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셋째는 “세상과 사회가 나를 자살하게 만든다”고 강변하는 경우다. 똑같은 고통을 겪으면서도 삶을 아름답게 성숙시키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흔히 존재하므로, 이는 변명이거나 억지일 수밖에 없다. 넷째는 “자살하면 세상과 완전히 결별한다”는 생각인데, 삶의 족적은 한 인격에게서 영원히 지울 수 없다는 것은 사후세계를 믿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자살을 예방하는 ‘웰-다잉 교육’, 그 생생한 사례
이 책 『자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죽음』은 자살을 둘러싼 모든 오해를 반박하고 예방책을 제시하는 책임에 분명하지만, 결국은 웰-다잉(Well-dying)의 길을 안내하는 교육서이기도 하다. 저자 오진탁 교수는 이전 저서 『마지막 선물』에서, 웰-빙(Well-being)이 좋은 먹거리나 추구하는 변종 이기주의가 아니라 정말로 ‘잘 사는’ 법을 추구하는 생활철학이 되려면 웰-다잉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한 바 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의 순간을 존엄하게 맞이하기 위해서는 삶 자체가 아름답고 성숙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자살의 가장 효과적인 예방책은 ‘웰-다잉 교육’에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책 말미에 수록한 「부록」에서는 웰-다잉 교육이 거두고 있는 자살예방 성과들이 생생한 사례와 함께 실려 있다. 저자가 학교 교육과 사회강연 활동을 하면서 직접 얻은 자료들이다. 자살을 심각하게 고려했던 대학생들과 주부들의 사례, 매일 죽음을 접하지만 오히려 죽음을 경시해온 간호사 등의 의식변화 사례를 본인들의 직접 고백을 통해 읽을 수 있다. 교육자와 피교육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